지난 목요일, 빨리 방학을 맞았다.
다른 녀석들은 모두 시험기간(심지어 아직도 시험기간이다. 나무아미타불)이라
룸메이트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을 섭취하러 오랜만에 신촌으로 나갔다.
하느님께서 6일동안 세상을 만드시고 7일째에 고기를 드셨다는 말은 사실일꺼야.
오랜만에 고기를 섭취하는데 어찌 술이 함께 하지 않았겠는가.
맥주잔에 소맥을 휘감아 들이키는데 목넘김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맞은 금요일과 토요일.
일요일까지 뽀지게 놀아보려 했는데, 막상 하려니 할 게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금요일에 여행을 떠났어야 했는데, 싶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책도 펴 봤다가, 멍하니 있어봤다가...
말년병장처럼 시간을 보내니 시간이 더디게라도 가긴 가더라.
어제, 토요일 밤.
도저히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생각이란 것을 사흘만에 하기 시작했다. 아주 곰곰히.
학교에서 하는 1순환은 당장 수요일에 시작인데,
D-365도 얼마 안남았는데 어디 여행가기는 그렇고,
마음은 좀 비워야겠고.
바다를 갈까, 산에 갈까, 공원에 갈까, 한강을 갈까, 계속 생각을 했다.
그리고 떠오른 군입대 전의 이야기, 추억여행.
이 블로그에 싸질러놓은 옛날 글 중에 아마 그런게 있지 않을까 싶다.
살았던 곳들을 모두 가보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내 흔적을, 내 추억을 찾고 싶다고.
그 글을 썼을 때 아마 호경이형이 당신도 그랬었다고 댓글을 달았던 것 같다.
그 짓을 드디어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목적지는 산본. 무려 13년 전에 2년동안 잠시 살았던 그 곳으로.
어떻게 변했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그대로 있을까, 온갖 생각이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룸메이트가 사다 준 크로와상과 커피...를 침대에 걸터누워 브런...치...로 먹고.
귀찮음을 이겨낸 채 갤럭시S2(개통이 안된 고자, 카메라와 DMB, MP3 기능을 훌륭하게 소화)느님을 모시고
여행에 나섰다. 무박 8시간의 시작.
운송수단은 지하철 - 버스 - 도보 - 지하철로 정했다.
그 때 그 시절, 사당에 있던 삼촌댁에 놀러갈 때, 그리고 산본 집으로 돌아올 때 탔던 빨간 버스를 타보고 싶었고, 맛있는 리브샌드위치를 파는 롯데리아가 있던 금정역을 다시 찾고 싶었기 때문에.
3번 마을버스를 타고 신촌역으로, 신촌역에서 사당역으로 향했다.
사당역 사거리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그런지, 건물만 삐까뻔쩍해 졌을 뿐 크게 바뀐 느낌은 없는 것 같다.
(아 여긴 자주 온 편이지..)
빨간 버스를 찾으러 과천방향도로를 뒤졌으나 산본행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광역버스들은 모두 용인, 수원쪽만 가는건가..
그런데 540번 버스가 산본을 가네. 세상 좋아졌구나.
'신환아파트'와 '군포경찰서' 정류장이 아직까지 있는걸 보고
산본도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540번 탑승. 과천과 안양을 거쳐 드디어 산본에 입성.
금정역 근처의 고가차도 출구로 빠지는 버스 안에서 꿈에 그리던 곳이 눈 앞에 펼쳐짐을 느낀다.
금정역 앞의 도로는 여전히 넓구나. 별로 안 변했네. 이상하게 안도감이 든다.
그리고 신환아파트. 13년 전 살았던 그 곳에 드디어 왔다.
저기 어린이집이 아마 내가 다니던 미술학원이었을테다. 선생님은 아주 아리따우셨고, 지금은 컬투가 된 컬트 삼총사의 친구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어린이집이 되었구나. 그 때 그 선생님은 잘 계실까.
아파트의 건너편에는 내 기억상으로는 가건물로 지어진 해물탕집과 허허벌판이 있었는데 병원이 생겼네.
차병원.. 이런 정비센터를 보면 군생활이 기억나서 별로 기분이 좋진 않다.
그리고...
신환아파트가 보인다.
정문이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물음이 시작된다.
* 그리고 모든것이 작아보이는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 계속 이어졌다.
무엇일까, 그저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동시에 속에서 무엇인가 북받쳐 오르는 이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한 순간 '하..'하는 탄성을 내뱉게 한다.
좋다. 오길 잘했다, 정말.
아파트 옆의 빌라도 여전히 함께 살아있었구나.
빌라 정문의, 아버지와 장난으로 500원짜리 즉석복권을 사던 슈퍼도,
그 뒤로 얼핏 보이는 열이네 집도 그대로 있구나. (김열, 그 녀석은 아직도 저기에 살고 있을까)
김열, 정우람, 한재민, 최재호, 안수길, 서예원, 노영아..
그 때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하나 둘 씩 떠올리기 시작한다.
4학년, 부산에서 전학을 왔지만 사투리를 전혀 쓰지않던 한 아이를 신기해 하며 친구가 되어 준 녀석들.
치고 박고 싸우고, 서로 토라지기도 했지만 공 한 번 차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붙어지내던 우리들.
팽이치기, 진실게임, 공기, 떡볶이, 축구, 중앙상가로의 소풍, 자전거, 학예회에서의 We Are the Future 공연, 분신사바, 눈싸움.. 이런 것들이 우리와 함께 했었지.
너희들은 지금 어떤 스물 다섯의 청년이 되어 있을까. 보고 싶다.
아파트로 서서히 걸어들어간다.
그런데,
정말 아파트가 작다.
13년전의 조그맣던 내 발걸음을 잊어버린 탓이다. (물론 지금도 작지만...)
그 때는 분명히 입구에서 이 즈음까지 꽤 오래 걸렸던 것 같은데,
BB탄 장난감 총을 들고 아파트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면 정말 오래걸렸는데,
이럴수가, 헛웃음이 나온다. 정말, 세상에. 한참동안 실실거리면서 바보처럼 웃었다. 이럴수도 있구나.
친구들과, 동생과 함께 놀던 놀이터엔 모래가 없어졌다. 놀이기구도 이쁘장하고 안전한 것들로 바뀌었고.
쌩쌩이(?) 회전하는 놀이기구는 없어졌다. 변한 것도 있구나.

102동 옆의 이 공간은 주차장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축구장이자 서바이벌 게임장이자 야구장이었다. 우리들을 혼내는 경비아저씨를 피해 달아나곤 했었지. 그 땐 아저씨가 우리들을 혼내는 것이 서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저 그 때의 어림에 부끄럽고도 즐거운 미소만 입가에 떠오른다.
102동에서 104동으로 꺾어들어가는 곳.
이 곳은 '팽이의 성지'였다.
요즘 꼬꼬마들은 뭐어? 탑블레이드? 그런것들에 환장해 있다는데, 우리 때는 야성이 존재했단다. 얘들아.
팽이놀이란 자고로 마찰력 좋은 (까끌까끌한) 줄로 정성들여 뿌리부터 감싸 묶은 다음에
팔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내려찍어 상대방이 자신있게 뿌려놓은 팽이를 KO시키는 것이야.
그 후에도 족히 1분은 자신의 각속도를 잃어버리지 않고,
땅을 파고 들 기세로 군자의 모습처럼 한결같이 회전해야 하지.
쇠팽이, 돌팽이 등 영입에 필요한 자금이 많이 드는 스타팽이를 보유한 자가 등장할때면 우리처럼 돈이 없어 중심축만 쇳덩이인 플라스틱 팽이를 가진 평민들은 GG를 치곤 했지.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기도 전의 이야기다.
너무 외전으로 빠졌네.
다시 본론으로.
여기 2층이 2년동안 살았던 그 곳. 201호. 아직도 안의 구조가 기억난다.
104동에서 상가로 넘어가는 길. 깔끔한 자전거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여기는 원래 나무가 가득한 숲길이었는데,
밤에 조명이 하나도 없어 엄마가 심부름을 보낼 때 마다 무서워서 눈을 꼭 감고 뛰어갔더랬다.
동생과 같이 갈 때는 꼴에 오빠라고 동생 눈 감기고 둘이서 손을 꽉 잡은 채,
눈 부릅뜨고 덜덜 거리면서 지나갔던..
지금 여기 사는 애들은 그런 거 없겠구나.
상가에는 점포가 많이 없었다. SSM이 들어온 것도 한 영향 했겠다, 싶다.
그래도 저 피아노학원과 특공무술학원은 13년 동안 살아있네. 용하다.
아파트를 나와서 주택가 쪽으로.
많은 상점들이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이 문구점만은 변하지 않고 살아있었다. 이렇게 기쁠수가.
사실 이 문방구에는 별로 가지 않았고,
지금은 호프집으로 변해버린 이 집이 그 당시 이 동네 최고의 미니카 전문점...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여기에는 산본 최고의 미니카 트랙, 아마 총 길이가 40미터는 되는 7층짜리 ... 가 있었다.)
여기를 자주 갔었지. 물론 용돈은 없었으니까 구경만 하러..
그 때는 골드블랙모터 한 번 사보는게 꿈인 아이였는데..
다시 아파트 근처로 돌아와서 104동 앞의 미니상가.
104동 앞에서 이 상가를 통하면 학교로 더 빨리 갈 수 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마다 1층의 태권도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며 신기해 했는데(그 당시 나는 태권도를 극단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에)
세상에, 아직도 있다.
Wow. 이렇게 13년이 흘렀음에도 남아있는 것들을 보면 왠지 모를 고마움이 든다.
이제, 학교로 간다.
가고, 돌아오던 길. 하교하던 길에 언제나 들리면 단돈 천원에 산더미 같은 떡볶이를 팔아주시던 엄마분식과 아줌마분식(바로 옆에 붙어있고, 이름도 엄마와 아줌마이던 이 역설적인 경쟁업체들은 언제나 호황을 이루었기에 사실 경쟁이라는 것이 무의미했다. 만석이 아닐 때가 거의 없었으니까)은 아직도 있을까 기대하며 걸어간다.
없다.... 요즘 애들은 떡볶이를 안 좋아하나?
하긴, 엄마분식과 아줌마분식 이모들 연세가 이제 장사 그만하실 때는 되셨겠지만...
여기에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학와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친구가 살았었다.
얘네집에 놀러가서, 내 마음을 모두 알고 있던 친구들이 진실게임하자고 몰아대서..
아오, 정말 더 이상은 발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오글거려서 못 쓰겠다. 귀엽긴 하지만, 그래도 오글거려.
여기 문방구도 아직 살아있구나!
여기서는 4학년 마치고 좋아했던 여자애한테 주려고 사탕을 샀었는데..
아오 이것도 오글거리네.
귀엽다. 귀엽다. 그 땐 그럴 수 있다. 귀엽다. 그래. 귀엽다. 그 땐 그럴 수 있다. 암, 그럼.
아휴.
뭐 이렇게 여자애들을 좋아했니 그 나이에?
학교 담벼락 옆의, 정문으로 가는 길.
이곳은 여전히 예쁘구나.
사진에서 보이는 교회도 여전히 있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이 길을 무던히도 뛰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교문. 아, 오랜만이네. 이것도 어릴 때는 엄청 커다란 문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조그맣냐...
교문을 들어서면,
운동장이 보인다.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이 곳은 2주마다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커다란 덤프가 왔었다. 아침에 모두 재활용품을 한아름씩 들고와서 선생님께 도장을 받곤 했지.
그리고 운동장과 학교.
여기서는 5학년 겨울, 눈싸움을 하다가 내가 던진 눈뭉치에 얼음이 들어있어 맞은 여자아이의 이마가 살짝 찢어진...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쉬이 믿지는 않겠지만 그 아이는 날 조..좋...좋아했었는데..;
4층, 맨 왼쪽의 교실이 13년 전에는 4학년 10반이었다.
처음으로 전학이란 것을, 그것도 언어권이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다보니 아버지, 엄마와 함께 찾아가던 교무실, 교실 가는 길이 얼마나 떨렸었는지 모른다.
참, 많은 일이 있던 교실이었지.
곧잘 친구들을 만들던 성격이라 좋은 친구들을 얻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던 탓일까 그 때부터 머리에 새치가 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새치를 보고 한약을 잘못 먹었나보다, 무를 잘못 먹었나보다 하지만 그게 아니야.
전학갔을 당시에는, 원래 담임선생님이 아파서 다른 선생님이 맞아주셨는데, 그 분은 참 좋은 분이었다.
자상하시고, 아이들 사랑하시는게 눈에 보이는.
건강이 나빠서 잠시 쉬었다던, 원래 담임선생의 컴백은 4학년 전학생에게 만만찮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분이 참 나쁘다고 생각되는 건,
맨날 애를 꾸중하고 그 나이의 꼬마가 보기에도 저 어른이 나를 미워하는구나라고 느낄 즈음
엄마가 찾아가서 면담하고 오니 (물론 지금 생각해서는 면담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머리는 좋았던 아이를 덜컥 수학경시대회에 추천해서 내보내 준 사건 때문이다.
갑자기 날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것에 어리둥절하다가 몇 년이 흐른후에 엄마에게 사정을 듣고서 얼마나 그 사람이 싫었는지 모른다.
엄마도 참, 얼마나 고민했을까. 시끄러운 아들놈이 풀이 죽어있으니 이상했겠지.
살면서 인복이 참 많다고 생각을 하는데, 유일하게 좋지 않은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사람.
12년의 학창시절동안 만나 뵈었던 선생님들을 참 존경하는데, 유일한 반례가 되는 사람. 그냥 그 때 자신의 몸이 아파서 예민해서 그랬다 생각하고 싶다.
유일하게 안 좋은 추억이네. 그래, 항상 좋은 추억만 있는 건 아니지.
다시 그 부분을 뺀 4학년과 5학년을 생각해본다.
정말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순박하고, 착하고.
예상했던 서울애들(경상도 애들이 원인 모를 적대감을 느끼는)과는 다른 착한 아이들이 주변에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던 경상도 농약같은가스나들과는 달리,
표준어 언어권에 살던 마치 외국사람같던 서울 여자애들은 밝게 먼저 다가와서 여자애들과도 많이 친했더랬다.
그리고 걔들과 공기놀이하던 장소.
여기 계단 위. 수업 끝나고 집에 안가고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옆에 던져둔 채 공기놀이 정신없이 했었지.
그러다가 반 대항으로 축구시합 잡히면 공기 때려치고 축구하러 나가고. 여자애들은 판 깬다고 뭐라 그러고.
재밌었는데 말야.
반가웠던 학교를 뒤로 하고,
옆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우와, 여기 되게 좋아졌네. 그런데 그 쪼그만 키로 농구하던 농구장 대신 배드민턴장이 들어선 것은 조금 아쉽다.
산본은 신도시로 설계되어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1~14단지의 아파트가 이어져 있는데,
동심원구조..라고 해야 하나? 단지 사이 사이에 공원이 참 많고 수리산도 있어서 살기에는 정말 좋다.
내가 살던 그 곳과 학교는 1단지 옆에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친구들의 대부분은 이 1단지에 살았더랬다.
이제, 영갑이를 만나러 간다. 중앙상가로.
대학와서 마영갑이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서로 몰랐었지만 그래도 동창(?)이니.
집에서 나와 중앙상가의 카페에서 시험공부하고 있다는 그에게
불시에 전화해 만나러 간다.
오랜만에 산본역을 본다.
멀끔한 모습은 여전하구나.
할리스에서 갑을 만났다.
시험이 내일인데도 고맙게 만나주는 착한 친구.
왜 이렇게 산본이 작아졌냐며 웃으며 묻고 옛날 어릴 때 산본에서의 이야기로 한동안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병진이 생파에서 만나기를 기약하고 다시 중심상가 탐방을 시작.
중앙상가도 크게 바뀐 것은 없구나. 사람 여전히 많고, 간판들만 바뀌었을 뿐 크게 바뀐 것은 없다.
여기 참 많이 놀러 왔었는데.
산본문고도 아직 살아있었구나. 저기서 책 참 많이 봤는데.
중앙상가의 정중앙의 분수대에서는 무더운 날에 꼬꼬마들이 시원하게 놀고 있다. 오늘 정말 더웠는데. 부럽다..
마지막으로 중앙공원과 중앙도서관으로 Go.
중앙공원 옆에 있던, 엄마가 잠시 일하던 약국이 있던 곳을 가보았는데....
부동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에휴.
중앙도서관. 13년동안 가장 많이 발전한 것 같았다.
내부도 아주 깔끔하게 바뀌었고, 시설 자체도 굉장히 좋아진 것 같았다.
13년전의 그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 대중화되지 못했고, 하이텔, 나우누리같은 PC 통신들의 제한된 Text만 있어서 숙제를 한다는 것은 도서관에 가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적어도 우리집에서는)
물론 숙제를 한다고 해봤자 도서관에 와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고 그것을 옮겨 적는다던가, 책을 빌려보고 독후감을 쓴다던가 등의 행동에 불과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숙제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제대로 된 지식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 움직여야한다는 것을 배운 것은 그 때 그 시절의 큰 배움이었다.
여튼 그래서 이곳은 자전거를 타고 참 많이도 왔었다.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자전거 타고 와서 책 읽다가 옆의 중앙공원에서 놀다 가는 경우도 많았으니. 풋풋한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럼 바로 옆의 중앙공원을 볼까.
여기도 깔끔해졌네.
그런데 예전에 있던 커다란 잔디밭이 없어진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프리스비 던지고 놀던 기억이 뚜렷한데.
사진 중심에서 10시 방향에 보이는 경사로를 올라가면,
이렇게 농구장과 배드민턴장이 내려다 보인다.
그 때 그 시절, 일요일 낮에 여기를 오면 사진에서 보이는 농구장 즈음에 트랙을 만들어서 지금 내 나이 또래? 혹은 조금 더 나이 든 아저씨들이 기름!을 넣은 엔진 RC카를 가지고 경주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부터 차라면 환장...을 했던 나로서는 눈이 뒤집힐 일이지.
엄마한테 저거 사달라고.. 사달라고.. 제발.. 조르니
엄마도 자동차에 미쳐있는 아들놈을 잘 알기에 아저씨들에게 가격 한 번 물어보았더랬다.
5~60만원 한다는 소식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는, 망연자실해서 엄마에게
'엄마, 한 3년정도 용돈 모으면 살 수 있어?'라고 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그 결심이 3개월도 채 가지 않았던 것 같지만...)
예비 기계공학도의 심장을 뛰게 한 엔진소리였는데 말야.
나중에 돈 좀 많이 벌게되면 꼭 사야지.
아들놈 낳으면 그놈한테는 전동 RC카 사주고 같이 조종하러 놀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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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추억여행이 끝났다.
중앙상가의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일기를 적으면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내 기억속에 소중하게 살아있는 기억들을 눈으로 다시 마주했다.
그 환희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내게 있어 산본은, 한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서 점차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 곳.
그 아이의 생각은 물론 철없고, 귀엽고, 어렸지만,
점차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고민이라는 것을 하게 해 준 곳이 바로 산본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 살이 넘어가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그렇게 되지 않겠냐만은.)
그 시기를 바로 이 곳에서 보냈기에 2년밖에 머물지 않았더라도 이 곳은 유난히 찾고 싶은 곳이 아니었나, 싶다.
고마웠다. 크게 변하지 않고 남아 있어 줘서. 내게 환희를 가져다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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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행에서
추억을 곱씹으면서 미래를 생각하려 했다.
마음을 비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리석은 시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은 언제나 이렇게 채워지기만 하는데, 비워보려한다고 그것이 될까.
그냥 마음을 꼭 채운채로, 열심히 살자.
적당한 번뇌도 있고, 적당한 즐거움도 있고, 적당한 행복도 있는 것이 당연한 삶이겠지.
번뇌가 없어야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감의 문제다.
당당하게 살자.
오늘 산본이 내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고.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며.
다른 녀석들은 모두 시험기간(심지어 아직도 시험기간이다. 나무아미타불)이라
룸메이트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을 섭취하러 오랜만에 신촌으로 나갔다.
하느님께서 6일동안 세상을 만드시고 7일째에 고기를 드셨다는 말은 사실일꺼야.
오랜만에 고기를 섭취하는데 어찌 술이 함께 하지 않았겠는가.
맥주잔에 소맥을 휘감아 들이키는데 목넘김이 아주 좋았다.
* 역시 우리나라 맥주(독과점..)는 소주의 용매로는 정말 최고의 스펙이 아닌가!
2차로 오랜만에 서른을 가서 레드락을 부어대고 오랜만에 반꽈알라가 되어 기숙사로 텔레포트.그리고 맞은 금요일과 토요일.
일요일까지 뽀지게 놀아보려 했는데, 막상 하려니 할 게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금요일에 여행을 떠났어야 했는데, 싶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책도 펴 봤다가, 멍하니 있어봤다가...
말년병장처럼 시간을 보내니 시간이 더디게라도 가긴 가더라.
어제, 토요일 밤.
도저히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생각이란 것을 사흘만에 하기 시작했다. 아주 곰곰히.
학교에서 하는 1순환은 당장 수요일에 시작인데,
D-365도 얼마 안남았는데 어디 여행가기는 그렇고,
마음은 좀 비워야겠고.
바다를 갈까, 산에 갈까, 공원에 갈까, 한강을 갈까, 계속 생각을 했다.
그리고 떠오른 군입대 전의 이야기, 추억여행.
이 블로그에 싸질러놓은 옛날 글 중에 아마 그런게 있지 않을까 싶다.
살았던 곳들을 모두 가보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내 흔적을, 내 추억을 찾고 싶다고.
그 글을 썼을 때 아마 호경이형이 당신도 그랬었다고 댓글을 달았던 것 같다.
그 짓을 드디어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목적지는 산본. 무려 13년 전에 2년동안 잠시 살았던 그 곳으로.
어떻게 변했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그대로 있을까, 온갖 생각이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룸메이트가 사다 준 크로와상과 커피...를 침대에 걸터누워 브런...치...로 먹고.
* 마치 병장에게 이등병이 아침식사를 갖다 바치는 것 같이 들릴수도 있겠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서로 평등과 배려, 그리고 존중을 생활화하고 있는 선진병영이다.
귀찮음을 이겨낸 채 갤럭시S2(개통이 안된 고자, 카메라와 DMB, MP3 기능을 훌륭하게 소화)느님을 모시고
여행에 나섰다. 무박 8시간의 시작.
2학사 앞에서 4학사를 보며, 출발
운송수단은 지하철 - 버스 - 도보 - 지하철로 정했다.
그 때 그 시절, 사당에 있던 삼촌댁에 놀러갈 때, 그리고 산본 집으로 돌아올 때 탔던 빨간 버스를 타보고 싶었고, 맛있는 리브샌드위치를 파는 롯데리아가 있던 금정역을 다시 찾고 싶었기 때문에.
3번 마을버스를 타고 신촌역으로, 신촌역에서 사당역으로 향했다.
사당역 사거리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그런지, 건물만 삐까뻔쩍해 졌을 뿐 크게 바뀐 느낌은 없는 것 같다.
빨간 버스를 찾으러 과천방향도로를 뒤졌으나 산본행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광역버스들은 모두 용인, 수원쪽만 가는건가..
그런데 540번 버스가 산본을 가네. 세상 좋아졌구나.
'신환아파트'와 '군포경찰서' 정류장이 아직까지 있는걸 보고
산본도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540번 탑승. 과천과 안양을 거쳐 드디어 산본에 입성.
금정역 근처의 고가차도 출구로 빠지는 버스 안에서 꿈에 그리던 곳이 눈 앞에 펼쳐짐을 느낀다.
금정역 앞의 도로는 여전히 넓구나. 별로 안 변했네. 이상하게 안도감이 든다.
그리고 신환아파트. 13년 전 살았던 그 곳에 드디어 왔다.
정류장 바로 옆. 병원이 들어섰구나.
차병원.. 이런 정비센터를 보면 군생활이 기억나서 별로 기분이 좋진 않다.
그리고...
나의 살던 (제 2의) 고향
정문이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물음이 시작된다.
* 그리고 모든것이 작아보이는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 계속 이어졌다.
무엇일까, 그저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동시에 속에서 무엇인가 북받쳐 오르는 이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한 순간 '하..'하는 탄성을 내뱉게 한다.
좋다. 오길 잘했다, 정말.
열이네 집과 복권사던 슈퍼
빌라 정문의, 아버지와 장난으로 500원짜리 즉석복권을 사던 슈퍼도,
그 뒤로 얼핏 보이는 열이네 집도 그대로 있구나. (김열, 그 녀석은 아직도 저기에 살고 있을까)
김열, 정우람, 한재민, 최재호, 안수길, 서예원, 노영아..
그 때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하나 둘 씩 떠올리기 시작한다.
4학년, 부산에서 전학을 왔지만 사투리를 전혀 쓰지않던 한 아이를 신기해 하며 친구가 되어 준 녀석들.
치고 박고 싸우고, 서로 토라지기도 했지만 공 한 번 차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붙어지내던 우리들.
팽이치기, 진실게임, 공기, 떡볶이, 축구, 중앙상가로의 소풍, 자전거, 학예회에서의 We Are the Future 공연, 분신사바, 눈싸움.. 이런 것들이 우리와 함께 했었지.
너희들은 지금 어떤 스물 다섯의 청년이 되어 있을까. 보고 싶다.
아파트로 서서히 걸어들어간다.
정말 아파트가 작다.
13년전의 조그맣던 내 발걸음을 잊어버린 탓이다. (물론 지금도 작지만...)
그 때는 분명히 입구에서 이 즈음까지 꽤 오래 걸렸던 것 같은데,
BB탄 장난감 총을 들고 아파트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면 정말 오래걸렸는데,
이럴수가, 헛웃음이 나온다. 정말, 세상에. 한참동안 실실거리면서 바보처럼 웃었다. 이럴수도 있구나.
쌩쌩이(?) 회전하는 놀이기구는 없어졌다. 변한 것도 있구나.
BB탄의 성지
102동 옆의 이 공간은 주차장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축구장이자 서바이벌 게임장이자 야구장이었다. 우리들을 혼내는 경비아저씨를 피해 달아나곤 했었지. 그 땐 아저씨가 우리들을 혼내는 것이 서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저 그 때의 어림에 부끄럽고도 즐거운 미소만 입가에 떠오른다.
팽이의 성지. 탑블레이드가 뭐냐?
이 곳은 '팽이의 성지'였다.
요즘 꼬꼬마들은 뭐어? 탑블레이드? 그런것들에 환장해 있다는데, 우리 때는 야성이 존재했단다. 얘들아.
팽이놀이란 자고로 마찰력 좋은 (까끌까끌한) 줄로 정성들여 뿌리부터 감싸 묶은 다음에
팔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내려찍어 상대방이 자신있게 뿌려놓은 팽이를 KO시키는 것이야.
그 후에도 족히 1분은 자신의 각속도를 잃어버리지 않고,
땅을 파고 들 기세로 군자의 모습처럼 한결같이 회전해야 하지.
쇠팽이, 돌팽이 등 영입에 필요한 자금이 많이 드는 스타팽이를 보유한 자가 등장할때면 우리처럼 돈이 없어 중심축만 쇳덩이인 플라스틱 팽이를 가진 평민들은 GG를 치곤 했지.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기도 전의 이야기다.
너무 외전으로 빠졌네.
다시 본론으로.
104동 앞. 영어교실 간판 아래에 있었던 경비초소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 때 경비아저씨는 정말 좋은 분이셔서, 아이들을 좋아하셔서 워낙 함께 잘 데리고 예뻐해주셨는데.
여기는 원래 나무가 가득한 숲길이었는데,
밤에 조명이 하나도 없어 엄마가 심부름을 보낼 때 마다 무서워서 눈을 꼭 감고 뛰어갔더랬다.
동생과 같이 갈 때는 꼴에 오빠라고 동생 눈 감기고 둘이서 손을 꽉 잡은 채,
눈 부릅뜨고 덜덜 거리면서 지나갔던..
지금 여기 사는 애들은 그런 거 없겠구나.
그래도 저 피아노학원과 특공무술학원은 13년 동안 살아있네. 용하다.
많은 상점들이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이 문구점만은 변하지 않고 살아있었다. 이렇게 기쁠수가.
사실 이 문방구에는 별로 가지 않았고,
(심지어 여기에는 산본 최고의 미니카 트랙, 아마 총 길이가 40미터는 되는 7층짜리 ... 가 있었다.)
여기를 자주 갔었지. 물론 용돈은 없었으니까 구경만 하러..
그 때는 골드블랙모터 한 번 사보는게 꿈인 아이였는데..
104동 앞에서 이 상가를 통하면 학교로 더 빨리 갈 수 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마다 1층의 태권도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며 신기해 했는데(그 당시 나는 태권도를 극단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에)
세상에, 아직도 있다.
이제, 학교로 간다.
저 경사길이 어릴때는 분명히 45도는 되어보였는데...
가고, 돌아오던 길. 하교하던 길에 언제나 들리면 단돈 천원에 산더미 같은 떡볶이를 팔아주시던 엄마분식과 아줌마분식(바로 옆에 붙어있고, 이름도 엄마와 아줌마이던 이 역설적인 경쟁업체들은 언제나 호황을 이루었기에 사실 경쟁이라는 것이 무의미했다. 만석이 아닐 때가 거의 없었으니까)은 아직도 있을까 기대하며 걸어간다.
하긴, 엄마분식과 아줌마분식 이모들 연세가 이제 장사 그만하실 때는 되셨겠지만...
얘네집에 놀러가서, 내 마음을 모두 알고 있던 친구들이 진실게임하자고 몰아대서..
아오, 정말 더 이상은 발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오글거려서 못 쓰겠다. 귀엽긴 하지만, 그래도 오글거려.
여기서는 4학년 마치고 좋아했던 여자애한테 주려고 사탕을 샀었는데..
아오 이것도 오글거리네.
귀엽다. 귀엽다. 그 땐 그럴 수 있다. 귀엽다. 그래. 귀엽다. 그 땐 그럴 수 있다. 암, 그럼.
아휴.
뭐 이렇게 여자애들을 좋아했니 그 나이에?
이곳은 여전히 예쁘구나.
사진에서 보이는 교회도 여전히 있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이 길을 무던히도 뛰어갔던 것 같다.
교문을 들어서면,
그리고 운동장과 학교.
처음으로 전학이란 것을, 그것도 언어권이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다보니 아버지, 엄마와 함께 찾아가던 교무실, 교실 가는 길이 얼마나 떨렸었는지 모른다.
참, 많은 일이 있던 교실이었지.
곧잘 친구들을 만들던 성격이라 좋은 친구들을 얻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던 탓일까 그 때부터 머리에 새치가 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새치를 보고 한약을 잘못 먹었나보다, 무를 잘못 먹었나보다 하지만 그게 아니야.
전학갔을 당시에는, 원래 담임선생님이 아파서 다른 선생님이 맞아주셨는데, 그 분은 참 좋은 분이었다.
자상하시고, 아이들 사랑하시는게 눈에 보이는.
건강이 나빠서 잠시 쉬었다던, 원래 담임선생의 컴백은 4학년 전학생에게 만만찮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분이 참 나쁘다고 생각되는 건,
맨날 애를 꾸중하고 그 나이의 꼬마가 보기에도 저 어른이 나를 미워하는구나라고 느낄 즈음
엄마가 찾아가서 면담하고 오니 (물론 지금 생각해서는 면담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머리는 좋았던 아이를 덜컥 수학경시대회에 추천해서 내보내 준 사건 때문이다.
갑자기 날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것에 어리둥절하다가 몇 년이 흐른후에 엄마에게 사정을 듣고서 얼마나 그 사람이 싫었는지 모른다.
엄마도 참, 얼마나 고민했을까. 시끄러운 아들놈이 풀이 죽어있으니 이상했겠지.
살면서 인복이 참 많다고 생각을 하는데, 유일하게 좋지 않은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사람.
12년의 학창시절동안 만나 뵈었던 선생님들을 참 존경하는데, 유일한 반례가 되는 사람. 그냥 그 때 자신의 몸이 아파서 예민해서 그랬다 생각하고 싶다.
유일하게 안 좋은 추억이네. 그래, 항상 좋은 추억만 있는 건 아니지.
다시 그 부분을 뺀 4학년과 5학년을 생각해본다.
정말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순박하고, 착하고.
예상했던 서울애들(경상도 애들이 원인 모를 적대감을 느끼는)과는 다른 착한 아이들이 주변에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던 경상도 농약같은가스나들과는 달리,
표준어 언어권에 살던 마치 외국사람같던 서울 여자애들은 밝게 먼저 다가와서 여자애들과도 많이 친했더랬다.
그리고 걔들과 공기놀이하던 장소.
그러다가 반 대항으로 축구시합 잡히면 공기 때려치고 축구하러 나가고. 여자애들은 판 깬다고 뭐라 그러고.
재밌었는데 말야.
반가웠던 학교를 뒤로 하고,
우와, 여기 되게 좋아졌네. 그런데 그 쪼그만 키로 농구하던 농구장 대신 배드민턴장이 들어선 것은 조금 아쉽다.
농구장 어디갔어...
산본은 신도시로 설계되어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1~14단지의 아파트가 이어져 있는데,
동심원구조..라고 해야 하나? 단지 사이 사이에 공원이 참 많고 수리산도 있어서 살기에는 정말 좋다.
내가 살던 그 곳과 학교는 1단지 옆에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친구들의 대부분은 이 1단지에 살았더랬다.
산본 1단지
이제, 영갑이를 만나러 간다. 중앙상가로.
대학와서 마영갑이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서로 몰랐었지만 그래도 동창(?)이니.
집에서 나와 중앙상가의 카페에서 시험공부하고 있다는 그에게
불시에 전화해 만나러 간다.
멀끔한 모습은 여전하구나.
할리스에서 갑을 만났다.
시험이 내일인데도 고맙게 만나주는 착한 친구.
왜 이렇게 산본이 작아졌냐며 웃으며 묻고 옛날 어릴 때 산본에서의 이야기로 한동안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병진이 생파에서 만나기를 기약하고 다시 중심상가 탐방을 시작.
여기 참 많이 놀러 왔었는데.
마지막으로 중앙공원과 중앙도서관으로 Go.
부동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에휴.
내부도 아주 깔끔하게 바뀌었고, 시설 자체도 굉장히 좋아진 것 같았다.
13년전의 그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 대중화되지 못했고, 하이텔, 나우누리같은 PC 통신들의 제한된 Text만 있어서 숙제를 한다는 것은 도서관에 가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적어도 우리집에서는)
물론 숙제를 한다고 해봤자 도서관에 와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고 그것을 옮겨 적는다던가, 책을 빌려보고 독후감을 쓴다던가 등의 행동에 불과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숙제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제대로 된 지식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 움직여야한다는 것을 배운 것은 그 때 그 시절의 큰 배움이었다.
여튼 그래서 이곳은 자전거를 타고 참 많이도 왔었다.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자전거 타고 와서 책 읽다가 옆의 중앙공원에서 놀다 가는 경우도 많았으니. 풋풋한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럼 바로 옆의 중앙공원을 볼까.
그런데 예전에 있던 커다란 잔디밭이 없어진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프리스비 던지고 놀던 기억이 뚜렷한데.
사진 중심에서 10시 방향에 보이는 경사로를 올라가면,
그 때 그 시절, 일요일 낮에 여기를 오면 사진에서 보이는 농구장 즈음에 트랙을 만들어서 지금 내 나이 또래? 혹은 조금 더 나이 든 아저씨들이 기름!을 넣은 엔진 RC카를 가지고 경주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부터 차라면 환장...을 했던 나로서는 눈이 뒤집힐 일이지.
엄마한테 저거 사달라고.. 사달라고.. 제발.. 조르니
엄마도 자동차에 미쳐있는 아들놈을 잘 알기에 아저씨들에게 가격 한 번 물어보았더랬다.
5~60만원 한다는 소식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는, 망연자실해서 엄마에게
'엄마, 한 3년정도 용돈 모으면 살 수 있어?'라고 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그 결심이 3개월도 채 가지 않았던 것 같지만...)
예비 기계공학도의 심장을 뛰게 한 엔진소리였는데 말야.
나중에 돈 좀 많이 벌게되면 꼭 사야지.
아들놈 낳으면 그놈한테는 전동 RC카 사주고 같이 조종하러 놀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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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추억여행이 끝났다.
중앙상가의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일기를 적으면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내 기억속에 소중하게 살아있는 기억들을 눈으로 다시 마주했다.
그 환희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내게 있어 산본은, 한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서 점차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 곳.
그 아이의 생각은 물론 철없고, 귀엽고, 어렸지만,
점차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고민이라는 것을 하게 해 준 곳이 바로 산본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 살이 넘어가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그렇게 되지 않겠냐만은.)
그 시기를 바로 이 곳에서 보냈기에 2년밖에 머물지 않았더라도 이 곳은 유난히 찾고 싶은 곳이 아니었나, 싶다.
고마웠다. 크게 변하지 않고 남아 있어 줘서. 내게 환희를 가져다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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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행에서
추억을 곱씹으면서 미래를 생각하려 했다.
마음을 비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리석은 시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은 언제나 이렇게 채워지기만 하는데, 비워보려한다고 그것이 될까.
그냥 마음을 꼭 채운채로, 열심히 살자.
적당한 번뇌도 있고, 적당한 즐거움도 있고, 적당한 행복도 있는 것이 당연한 삶이겠지.
번뇌가 없어야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감의 문제다.
당당하게 살자.
오늘 산본이 내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고.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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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여행 ㅎㅎ 나도 이거 1학년때 해봤는데 ㅎㅎ
재밌지 돌아본다는것도...